상사가 보낸 애매한 지시를 AI에게 정리해 달라고 해봤더니, 막연했던 내용을 해야 할 일과 확인할 질문, 업무 순서로 나누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상사의 진짜 의도까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실제 업무에서 받을 법한 애매한 지시를 준비해 AI에게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시를 구체적인 할 일로 나누고, 시작 전에 확인해야 할 질문과 업무 순서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AI가 정리한 결과가 실제 업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어떤 부분은 사람이 다시 판단해야 하는지 살펴봤다.
한 문장의 지시가 여러 개의 할 일로 나뉘었다
실험에 사용한 지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지난 분기 실적 자료 참고해서 다음 회의 때 공유할 수 있게 정리해 주세요. 중요한 내용 위주로 보기 좋게 만들고, 다른 팀 자료도 필요하면 받아서 넣어 주세요. 가능하면 이번 주 안에 초안 먼저 봅시다.”
처음 읽었을 때 대략적인 방향은 알 수 있었다. 지난 분기 실적을 정리해 회의 자료를 만들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다음 회의’가 정확히 언제인지, 자료를 문서로 만들지 발표 자료로 만들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내용이 매출인지 목표 달성률인지, 문제점과 개선안까지 포함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다른 팀의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 초안을 이번 주 어느 날까지 보여줘야 하는지도 확인이 필요했다.
AI에게 이 지시를 입력하고 해야 할 일, 확인할 질문, 우선순위로 나누어 달라고 요청했다. AI는 먼저 할 일을 여섯 단계로 정리했다. 지난 분기 자료 찾기, 주요 숫자와 변화 확인하기, 회의 자료의 기본 틀 만들기, 부족한 자료 확인하기, 다른 팀에 자료 요청하기, 초안 작성 후 검토받기 순서였다.
막연하게 느껴졌던 지시가 작은 업무로 나뉘자 시작점이 보였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이전 메일을 계속 뒤지는 대신, 먼저 지난 분기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면 됐다. 자료를 찾은 다음에는 전부 옮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띄는 변화와 중요한 숫자를 고르는 순서로 진행할 수 있었다.
특히 ‘다른 팀 자료도 필요하면 받아서 넣어 주세요’라는 문장을 바로 자료 요청으로 바꾸지 않고, 먼저 어떤 정보가 부족한지 확인하도록 정리한 점이 유용했다. 필요한 자료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팀에 연락하면 불필요한 요청을 하거나 여러 번 다시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지시를 보기 좋게 정리했지만 새로운 정보를 알아낸 것은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을 나누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결과물의 형식과 분량처럼 상사만 알고 있는 내용은 여전히 확인해야 했다.
질문을 정리하니 상사에게 무엇을 물을지 분명해졌다
AI는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질문도 정리했다. 회의 날짜, 결과물 형식, 자료의 분량, 가장 중요하게 볼 내용, 다른 팀에서 필요한 정보, 초안을 보여줄 날짜가 주요 질문으로 나왔다.
평소라면 “자료를 어떤 식으로 만들까요?”라고 한꺼번에 물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범위가 넓어 상사도 다시 생각해서 답해야 한다. AI가 정리한 질문은 무엇이 불분명한지 하나씩 보여줘서 확인하기 쉬웠다.
다만 모든 질문을 그대로 상사에게 보내는 것은 부담스러워 보였다. 질문이 여섯 개나 되면 지시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바로 확인해야 하는 것과 일하면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을 나눴다.
가장 먼저 물어야 할 내용은 결과물의 형식과 초안 마감일이었다. 발표 자료인지 간단한 문서인지에 따라 준비 방식이 달라지고, 초안 날짜를 알아야 전체 일정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하게 볼 내용도 매출 중심인지 문제점 중심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반면 글꼴이나 세부 분량, 자료를 보여주는 순서는 먼저 초안을 만든 뒤 조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팀의 자료도 내부 자료를 살펴본 다음 부족한 내용이 확인됐을 때 요청하면 됐다.
최종적으로 상사에게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짧게 확인했다. “다음 회의 공유용 자료는 발표 형식으로 준비하면 될까요? 지난 분기 실적 중 매출 변화와 주요 문제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목요일 오후에 초안을 드리는 일정으로 진행해도 되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질문하니 단순히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한 방향을 먼저 보여주고 확인을 받는 형태가 됐다. 상사도 전체 지시를 다시 설명할 필요 없이 맞는 부분과 수정할 부분만 답할 수 있었다.
AI의 도움을 가장 크게 받은 부분도 여기였다. 애매함을 없애 주지는 못했지만, 무엇이 애매한지를 눈에 보이게 정리해 줬다. 덕분에 불필요한 질문은 줄이고 업무 방향에 영향을 주는 내용만 골라 물을 수 있었다.
우선순위는 참고할 만했지만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해야 했다
AI는 업무 순서도 제안했다. 가장 먼저 회의 일정과 결과물 형식을 확인하고, 그다음 지난 분기 자료를 모은 뒤 중요한 내용을 고르도록 했다. 이후 부족한 정보가 있으면 다른 팀에 요청하고, 자료가 모두 모이기 전이라도 기본 틀부터 작성하라고 했다.
이 순서는 대체로 현실적이었다. 모든 자료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초안 작성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사용할 수 있는 자료로 틀을 만들고, 추가 자료가 오면 채워 넣는 방법이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AI가 정한 우선순위를 그대로 따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다른 팀은 자료를 전달하는 데 이틀 정도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AI는 내부 자료를 모두 검토한 뒤 요청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초안 날짜를 맞추기 어려울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팀에서 필요한 자료를 대략 판단한 뒤 먼저 요청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내부 자료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순서를 바꿨다. AI는 일반적으로 자연스러운 순서를 만들었지만, 부서별 업무 속도와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알 수는 없었다.
상사가 말한 ‘중요한 내용’의 기준도 AI가 정할 수 없었다. AI는 매출 변화와 목표 달성률, 주요 문제를 우선하라고 제안했지만, 실제로 상사는 다음 분기 계획에 영향을 주는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전 회의에서 상사가 자주 확인했던 항목과 최근에 강조한 내용을 함께 떠올려야 했다.
보안에도 주의가 필요했다. 실제 지시에는 회사 이름, 매출 수치, 거래처 정보가 들어갈 수 있다. AI에게 정리를 요청할 때는 구체적인 이름과 숫자를 지우고 ‘A팀’, ‘지난 분기 실적’, ‘고객사 자료’처럼 바꿔 입력하는 편이 안전하다.
이번 실험을 통해 AI는 애매한 지시를 정확한 정답으로 바꾸는 도구가 아니라, 일을 시작하기 쉽게 정리하는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할 일을 작은 단계로 나누고, 확인할 질문을 찾고, 기본 순서를 만드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됐다.
하지만 AI가 상사의 마음을 읽어 주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은 마감일이나 기대하는 수준, 조직 안에서 중요하게 보는 기준까지 알아낼 수는 없다. AI가 추측한 내용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면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상사의 애매한 지시를 AI에게 정리시키는 방법은 업무를 시작하기 전 생각을 정돈하는 데 유용했다. 특히 해야 할 일과 질문을 나누면서 지시에서 빠진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AI가 만든 정리를 바탕으로 내가 이해한 업무 방향을 한두 문장으로 다시 적고, 중요한 부분만 상사에게 확인하는 것이다. AI는 지시를 대신 해석하는 상사가 아니라,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정리 도구로 활용하는 편이 좋다.